나는 이타적인 편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통 이런 바람을 티내는 순간, 상대방은 불편해진다.

 

가령, “니가 좋아해줬으면 해서 준비했어” 라며 예상치 못한 선물을 준다던지.

그런 선물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만약 좋아하지 않는 선물이라면, ‘좋아하는 모습’을 연기하도록 강요받는 꼴이 돼버린다.

 

또는 “니가 힘들까봐 내가 다 해놨어” 라며 팀플을 혼자 해버린다던지.

만약 성장을 원하는 친구라면,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느낄 수 있다.

 

핵심은 이기적인 이타심이냐, 이타적인 이타심이냐 이다.

 

이기적인 이타심은 이런거다.

남들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

그 기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야 집단에서 버림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즉, ‘나’의 자기효능감을 증명하는데에 목적이 있다.

그로 인해 베풂에 대한 보상을 끊임없이 바라게 된다.

당연히 베풂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하고, 보상으로 돌려주지 않는 관계는 정리한다는 식으로 흘러가곤 한다.

 

이타적인 이타심은 이런거다.

‘남들’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즉, ‘남’이 더 나은 상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베풂에 대한 보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상이 있으면 좋은거고, 아니면 말고.

 

어느 책(아마 데일 카네기였지 않을까?)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후, 내 생각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후자였다.

내가 필요해지든 필요해지지 않든 내 사람이 행복해졌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굳이 나의 필요성을 증명하고자 집착하지 않는다.

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떠나가면 떠나가는거고, 내 주변에 있는다면 최선을 다해 돕는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나는 잊혀진 선의를 좋아한다.

내가 베풀었던 것들이 언제 보상으로 돌아올까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머릿속에서 베풀었던 기억이 잊혀지기를 바란다.

보상 받기를 바라게 될지도 모르니까.

 

약 3년 전, 재미로 가죽 공예를 시작했었다.

당시 연구실 후배들이 카드 지갑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하나씩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했었다.

최상급의 가죽들만 고르고, 각 사람에게 맞는 실용적인 도안을 설계하고, 바느질 한 땀 한 땀을 신경써서 하고, 마감제를 꼼꼼히 처리하기 위해 약품을 바르고 말리고를 1주일 내내 반복하고.

여간 오래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들을 즐겼고, 언젠가 추억으로 되새길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잊혀졌다.

 

약 3년이 지난 시점.

잊혀진 선의가 돌아왔다.

진심으로 아직까지 사용해주고 있었음에 감사했다.

기대하지 않고 있던 보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모습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모습
약 3년간 사용된 모습
약 3년간 사용된 모습
만들어진 직후 모습
만들어진 직후 모습
3년간 사용된 모습
3년간 사용된 모습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이 짓을 그만둘 수 있을까?

고맙다.